율리우스 리하르트 페트리는 현대 미생물학 연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도구인 '페트리 접시'를 발명하여 실험실의 풍경을 완전히 바꾼 인물입니다. 로베르트 코흐의 조수로 활동하던 그는 당시 세균 배양에 사용되던 무겁고 불편한 유리 덮개(벨 자) 방식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1887년 그가 고안한 이중 구조의 유리 접시는 외부 오염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도 세균 성장에 필요한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하여 순수 배양 기술의 표준을 확립했습니다. 이 단순한 디자인 덕분에 과학자들은 배지를 여러 층으로 쌓아 공간을 절약하고 현미경으로 균의 성장을 실시간 관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페트리의 발명은 전 세계 실험실의 연구 환경을 표준화하여 현대 세균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결정적인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거창한 이론보다 실용적인 아이디어가 과학적 진보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투명한 우주를 손에 쥐고
학부시절 미생물학을 전공했던 저에게 있어 하루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지름 90mm, 높이 15mm의 투명한 원형 우주와 함께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페트리 디쉬(Petri Dish)'라고 불렀습니다.
졸업 논문 실험을 위해 수백 개의 배지를 만들고 굳히던 어느 날 밤, 멸균된 배지를 붓고 뚜껑을 덮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 접시를 만들었을까?" 뚜껑이 바닥보다 약간 커서 공기는 통하지만 먼지는 들어가지 않는 구조. 쌓아 올리기 편하고 투명해서 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좋은 이 완벽한 디자인은 과연 누가 만들었지?
당시에는 그저 지나가는 궁금증이었지만, 26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전공 서적과 과학사의 기록들을 뒤적이며 그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쓰고 버리는 이 실험도구 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정복하려 했던 한 과학자의 실용주의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저는 미생물학의 숨은 영웅, 율리우스 리하르트 페트리의 이야기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코흐의 연구실과 불편한 진실: 벨 자(Bell Jar)의 시대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우리는 19세기 후반, 세균학의 황금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시 과학계는 루이 파스퇴르와 로베르트 코흐라는 두 거장에 의해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막 깨닫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특히 로베르트 코흐는 액체 배양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균을 순수하게 분리해낼 수 있는 '고체 배양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하지만 초기의 고체 배양 방식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코흐는 평평한 유리판(Slide glass) 위에 젤라틴이나 감자 단면을 놓고 그 위에 균을 배양했습니다. 문제는 '오염(Contamination)'이었습니다. 공기 중에는 수많은 잡균과 곰팡이 포자가 떠다니기 때문에, 배지를 그냥 두면 원하지 않는 균들이 내려앉아 실험을 망치기 일쑤였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코흐는 거대하고 무거운 유리 종(Bell Jar)을 유리판 위에 덮어두어야 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실험 하나를 할 때마다 무거운 유리 종을 덮었다 열었다 해야 하고, 현미경으로 관찰하려면 그 종을 치워야 했습니다. 게다가 이 장치는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해서 한 번에 많은 샘플을 배양할 수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배양 중인 세균을 관찰하기 위해 뚜껑을 여는 순간, 공기 중의 오염 물질이 침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위대한 발견을 위해서는 '도구의 혁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레곤의 시선: 불편함이 발명의 어머니]
학부 시절, 클린벤치(Clean bench) 안에서도 오염이 되어 배지를 통째로 버리며 좌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물며 무거운 유리 덮개를 사용하던 시절의 연구원들이 느꼈을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미생물학의 역사는 어쩌면 '오염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코흐의 위대한 발견 뒤에는 이런 비효율적인 도구와 싸워야 했던 연구원들의 피땀이 서려 있었습니다.
군의관 출신의 조수, 율리우스 리하르트 페트리의 등장

이러한 비효율적인 상황을 타개한 인물은 코흐 본인이 아니라, 그의 연구실에 파견 나온 한 명의 조수였습니다. 1852년 독일 부퍼탈에서 태어난 율리우스 리하르트 페트리(Julius Richard Petri)는 원래 군의관이었습니다. 그는 베를린의 카이저-빌헬름 육군 의학 아카데미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1876년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 1877년 베를린의 제국 보건국(Imperial Health Office)에 배속되면서 로베르트 코흐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당시 코흐는 결핵균 발견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고, 그의 연구실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재들로 북적였습니다. 페트리는 코흐의 조수로 일하며 세균 배양 실험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습니다.
군의관 출신답게 페트리는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매번 무거운 유리 종을 들어 올리고, 평평한 유리판 위에서 젤라틴이 흘러내리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실험 과정이 너무나 번거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간단하고, 더 안전하며, 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이 현대 생물학을 바꿀 위대한 발명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레곤의 시선: 현장의 목소리]
페트리가 위대한 과학자 코흐의 그늘에 가려진 조수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리더는 거시적인 방향을 제시하지만, 실제로 손에 흙을 묻히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장의 실무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군의관으로서 신속하고 정확한 처치를 중요시했던 페트리의 배경이, 복잡하고 느린 실험실의 관행을 깨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미생물학은 이론만큼이나 '손기술(Technique)'이 중요한 학문임을 페트리는 보여줍니다.
1887년, '작은 수정'이 가져온 거대한 혁명
1887년, 페트리는 "평판 배양 기법의 작은 수정(A minor modification of the plating technique of Koch)"이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을 발표합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페트리 접시의 원형을 소개합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 평평한 유리판 대신, 가장자리가 올라온 얕은 원통형 유리 접시를 사용한다. (이로써 배지가 흐를 염려가 사라졌습니다.)
- 그 접시보다 지름이 약간 더 큰, 똑같은 모양의 뚜껑을 덮는다.
이 단순한 구조가 가져온 변화는 혁명적이었습니다. 먼저, 뚜껑이 바닥 접시를 덮으면서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밀폐되지만, 완전히 밀봉되지는 않아 세균 성장에 필요한 산소는 통하고 공기 중의 낙하균(먼지와 함께 떨어지는 세균)은 차단되었습니다. 이는 파스퇴르의 '백조 목 플라스크' 원리를 접시에 적용한 것과 같았습니다.
또한, 접시 모양이기 때문에 젤라틴이나 한천(Agar) 배지가 옆으로 흐를 염려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층(Stacking)'이 가능해졌다는 점입니다. 평평한 윗면 덕분에 배지 여러 개를 아파트처럼 쌓아 올릴 수 있게 되어, 좁은 배양기(Incubator) 안에서 한 번에 수십, 수백 개의 샘플을 배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페트리는 이 접시를 사용하면 현미경 관찰 시 뚜껑을 열 필요 없이 투명한 유리를 통해 바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오염의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관찰의 편의성은 극대화한 것입니다.
[레곤의 시선: 단순함의 미학]
페트리 접시의 디자인은 140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완벽했다는 뜻입니다. 미생물학 실험을 하면서 페트리 접시를 한 손으로 잡고, 약지랑 새끼손가락으로 뚜껑을 살짝 들어 올려 백금이(Loop)로 균을 획선 도말(Streaking)하는 그 손동작은 전 세계 모든 미생물학도의 공통된 언어입니다. 이 단순한 유리 그릇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무거운 유리 종 아래서 끙끙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가장 위대한 발명은 가장 단순한 해결책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환상의 짝꿍: 파니 헤세의 아가(Agar)와 페트리 접시의 결합
페트리 접시가 발명되었다고 해서 바로 만능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용하던 젤라틴 배지는 20도만 넘어도 녹아버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체온인 37도에서 병원균을 배양하면 배지가 물처럼 녹아버려 세균을 분리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젤라틴을 분해하는 효소를 가진 세균들이 많아 배양 도중에 배지가 액화되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또 다른 숨은 조력자, 파니 헤세(Fanny Hesse)였습니다. 코흐 연구소의 연구원 발터 헤세의 아내였던 그녀는, 남편이 젤라틴 때문에 고민하자 자신이 젤리나 푸딩을 만들 때 쓰던 '한천(Agar)'을 써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녀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자바섬에 살았던 이웃으로부터 한천을 소개받아 요리에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해조류(우뭇가사리)에서 추출한 한천은 100도 가까이 가열해야 녹고, 한 번 굳으면 40도 이상에서도 녹지 않는 완벽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미생물은 한천을 분해하지 못했습니다.
페트리의 '접시'와 파니 헤세의 '한천'이 만났을 때, 비로소 현대적인 의미의 미생물학이 완성되었습니다. 한천은 페트리 접시 안에서 단단하게 굳어 매끄러운 표면을 제공했고, 페트리 접시는 그 한천이 마르지 않게 보호했습니다. 이 두 가지 발명품의 결합으로 과학자들은 체온과 같은 온도에서 병원균을 마음껏 배양하고 순수 분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곤의 시선: 융합과 협력의 산물]
과학사는 종종 한 명의 천재를 부각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사람의 아이디어가 모여 발전합니다. 페트리 접시라는 '하드웨어'에 아가라는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었기에 비로소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파니 헤세의 기여는 오랫동안 잊혀 있었지만, 그녀의 부엌 지혜가 없었다면 페트리 접시도 반쪽짜리 발명품에 그쳤을 것입니다. 미생물학은 이처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통찰이 빚어낸 거대한 모자이크와 같습니다.
표준화의 힘: 전 세계 실험실을 하나로 묶다

페트리 접시의 보급은 과학 연구의 '표준화(Standardization)'를 가져왔습니다. 이전에는 연구자마다 사용하는 용기가 제각각이라 실험 결과를 재현하거나 비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떤 실험실은 유리판을, 어떤 곳은 플라스크를 사용했기 때문에 배양 조건이 달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페트리 접시가 도입되면서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동일한 규격,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과학자들은 논문에 "지름 90mm 페트리 접시에서 배양했다"라고 쓰기만 하면, 지구 반대편의 과학자도 똑같은 환경을 재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세균학뿐만 아니라 곰팡이 연구, 이후의 항생제 감수성 검사(디스크 확산법), 그리고 현대의 세포 배양과 유전 공학에 이르기까지 생물학 전반의 발전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습니다. 특히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를 발견할 때 사용했던 것도 바로 이 페트리 접시였습니다. 곰팡이 주변에 세균이 자라지 못하는 투명환(Clear zone)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도, 페트리 접시의 넓고 평평한 표면 덕분이었습니다.
[레곤의 시선: 재현성이라는 과학의 본질]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현 가능성'입니다. 나만 할 수 있는 실험은 과학이 아니라 마술입니다. 페트리 접시는 누구나 쉽게 미생물을 다룰 수 있게 함으로써 과학의 민주화를 이끌었습니다. 2000년 학부 시절, 동기들과 똑같은 배지를 나눠 갖고 실험했을 때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면, 그것은 도구 탓이 아니라 내 손 탓(똥손)임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페트리 접시는 핑계를 댈 수 없는 정직한 도구였던 셈입니다.
유리에서 플라스틱으로: 일회용품 시대와 환경의 역설
페트리가 처음 만든 접시는 유리였습니다. 실험이 끝나면 깨끗이 씻어서 멸균기에 돌려 다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플라스틱 기술이 발달하면서, 폴리스티렌(Polystyrene)으로 만든 일회용 페트리 접시가 등장했습니다.
일회용 접시는 세척과 멸균의 번거로움을 없애고, 실험 간의 교차 오염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주었습니다. 미리 멸균되어 포장된 플라스틱 접시를 뜯어 쓰기만 하면 되는 편리함은 연구 효율을 극대화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실험실에서는 유리 접시보다는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를 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바로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 폐기물입니다. 미생물 실험 후 나오는 배지 폐기물은 감염성 폐기물로 분류되어 소각 처리되어야 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페트리의 발명은 과학을 발전시켰지만, 현대의 우리에게는 환경 보호라는 새로운 숙제를 남겼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페트리 접시나, 다시 유리 재질의 접시를 사용하는 움직임도 조금씩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다시 과학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레곤의 시선: 편리함의 대가]
2000년 당시에도 실험실 쓰레기통에 산더미처럼 쌓이던 플라스틱 페트리 접시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유리는 무겁고 깨지기 쉽지만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페트리가 살던 시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혁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페트리의 말년과 잊혀진 이름
페트리 접시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정작 페트리 자신은 그 발명으로 큰 부자가 되거나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평생을 공중 보건과 위생학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1886년부터 1889년까지 그는 베를린의 고베르스도르프 요양원에서 결핵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이후 1900년 제국 보건국에서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에도 그는 샬로텐부르크의 위생 박물관을 운영하며 대중에게 위생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그는 1921년 12월 20일, 독일 차이츠(Zeitz)에서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록 그는 대중적인 스타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이름은 전 세계 모든 생물학 실험실에서 매일 수백만 번씩 불리고 있습니다. 과학자의 이름이 도구의 이름이 되어 영원히 남는다는 것, 어쩌면 노벨상보다 더 명예로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레곤의 시선: 영원히 기억되는 법]
우리는 종종 거창한 업적만을 좇습니다. 하지만 페트리의 삶은 자신의 자리에서 느꼈던 작은 불편함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접시' 하나로 자신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도 전공자로서 후배들에게, 혹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페트리 접시'는 무엇입니까? 세상을 조금 더 편리하게 바꿀 당신만의 작은 아이디어는 무엇입니까?
자주 물어보는 질문 (FAQ)
Q: 페트리 접시가 발명되기 전에는 세균을 어떻게 배양했나요?
A: 평평한 유리판 위에 배지를 깔고 그 위에 '벨 자'라고 불리는 무거운 종 모양의 유리 덮개를 씌워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오염에 취약하고 관찰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Q: 페트리 접시의 이중 구조가 가진 과학적 원리는 무엇인가요?
A: 뚜껑이 바닥 접시보다 약간 크게 설계되어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덮입니다. 이 틈새를 통해 세균 성장에 필요한 산소는 통과시키되, 위에서 떨어지는 먼지나 잡균은 차단하는 원리입니다.
Q: 율리우스 리하르트 페트리는 로베르트 코흐와 어떤 관계였나요?
A: 페트리는 '세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베르트 코흐의 조수이자 제자였습니다. 그는 코흐 연구소에서 근무하며 실험 현장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도구적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Q: 페트리 접시의 도입이 왜 '표준화의 혁명'이라고 불리나요?
A: 전 세계 과학자들이 동일한 규격의 접시를 사용하게 되면서, 서로의 실험 결과를 동일한 조건에서 재현하고 비교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Q: 오늘날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페트리 접시는 과거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A: 초기에는 유리로 만들어 멸균 후 재사용했으나, 현대에는 실험의 효율성과 오염 방지를 위해 폴리스티렌 재질의 멸균된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를 주로 사용합니다.
레곤이 보내는 편지: 기본에 충실하며
문득 실험실을 둘러보던 날. 선반 위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수많은 페트리 접시들. 그 안에는 대장균도 있었고, 포도상구균도 있었고, 때로는 실수로 피어난 이름 모를 곰팡이도 있었습니다. 그 작은 우주들이 모여 저를 미생물학도로 성장시켰습니다.
율리우스 리하르트 페트리. 비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과학의 탑을 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튼튼한 벽돌을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첨단 바이오 기술의 화려함 뒤에는, 140년 전 한 군의관 출신의 실용적인 고민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클린벤치 앞에서 뚜껑을 살짝 열고 조심스레 균을 심고 있을 전 세계의 모든 연구원에게, 그리고 그들의 손에 들린 투명한 페트리 접시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기본이 혁신을 만듭니다.
[참고 문헌]
- Petri, R. J. (1887). "Eine kleine Modification des Koch'schen Plattenverfahrens" (A minor modification of the plating technique of Koch). Centralblatt für Bakteriologie und Parasitenkunde, 1, 279-280.
- (페트리 접시의 원형을 처음으로 소개한 역사적인 논문. 단 2페이지의 짧은 글이지만 과학사를 바꾼 기록이다.)
- Koch, R. (1881). "Zur Untersuchung von Pathogenen Organismen" (On the investigation of pathogenic organisms). Mittheilungen aus dem Kaiserlichen Gesundheitsamte, 1, 1-48.
- (로베르트 코흐의 고체 배양법이 소개된 논문으로, 페트리 접시 발명의 배경이 되는 연구이다.)
- Hesse, W. (1884). "Ueber die quantitative Bestimmung der in der Luft enthaltenen Mikroorganismen". Mittheilungen aus dem Kaiserlichen Gesundheitsamte, 2, 182-207.
- (발터 헤세와 파니 헤세의 한천(Agar) 사용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문헌.)
- Lagorio, A. (1887). "Über die Natur der Glaspilze". Berichte der Deutschen Botanischen Gesellschaft.
- Shama, G. (2019). "The 'Petri' dish: A case of simultaneous invention?". Endeavour, 43(1-2), 11-16.
- (페트리 접시의 발명 과정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동시대의 유사한 발명들에 대해 다룬 현대의 리뷰 논문.)
'[미생물학의 선구자들] – 발견과 기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파스퇴르 vs 코흐: 근대 미생물학의 두 거인이 벌인 세기의 경쟁과 협력 (0) | 2026.08.06 |
|---|---|
| 패니 헤세: 우연한 아이디어, '한천(Agar)'을 이용해 세균 배양의 혁명을 일으키다 (0) | 2026.07.31 |
| 세르게이 비노그라드스키: 토양 미생물학의 창시자, 무기물을 먹고 사는 미생물 발견 (0) | 2026.07.30 |
| 현미경의 눈으로 본 세상: 레벤후크부터 로버트 훅까지, 초기 관찰자들이 바꾼 생명관 (0) | 2026.07.27 |
| 페르디난드 콘: 세균학의 체계적 분류와 '내생포자'의 발견 (0) | 2026.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