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힐만은 평생 40여 종의 백신을 개발하며 현대 공중보건의 기틀을 마련한 현대 백신학의 거인입니다. 그는 학문적 명성보다 사람을 살리는 실용적 결과물을 중시하여 평생을 제약업계 연구 현장에서 보냈습니다. 1957년 아시아 독감 당시에는 단 한 줄의 기사로 팬데믹을 예견하고 백신을 대량 생산해 수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특히 볼거리 백신 개발을 위해 아픈 딸의 목구멍에서 직접 바이러스를 채취한 '제릴 린' 일화는 그의 집념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그는 세계 최초의 항암 백신으로 불리는 B형 간염 백신을 완성하고, 소아마비 백신 공정의 오염 문제를 정직하게 공개하며 과학적 양심을 지켰습니다. 비록 노벨상은 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안전한 유년기는 그의 헌신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그의 업적은 논문 이상의 가치인 인류의 생존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교과서 너머의 영웅을 찾아서
학부시절엔 파스퇴르나 코흐, 플레밍 같은 위인들의 이름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정작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이 주사는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전공 서적 한구석, 바이러스 파트의 참고문헌 목록에서 저는'Hilleman'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백신의 개발자에 그의 이름이 적혀 있어, 처음에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거대 제약회사의 연구팀 명칭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실존했던, 그것도 동시대에 살아 숨 쉬었던 단 한 명의 과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역사상 그 어떤 과학자보다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지만, 그 어떤 과학자보다 덜 알려진 '모리스 힐만'의 이야기를 전해보려 합니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현대 의학의 역사이며, 인간이 질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록입니다.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독종: 성장 배경과 학계가 아닌 산업계로의 진출

모리스 힐만은 1919년 미국 몬타나주의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유년 시절은 비극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어머니와 쌍둥이 누이가 사망했고, 그는 친척 집을 전전하며 자랐습니다. 대공황 시기의 가난과 척박한 환경은 그를 강인하고 실용적이며, 때로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당시 그의 연구 능력은 탁월하여 교수들은 그가 학계에 남아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힐만은 "나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며 거대 제약회사인 E.R. 스큅(E.R. Squibb & Sons)에 입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상아탑의 학자가 '장사치'들의 소굴인 제약회사에 가는 것은 타락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힐만에게는 명예보다 '실제적인 결과물'이 중요했습니다. 그는 대학 강단에서 논문을 쓰는 것보다, 공장에서 백신을 만들어 병마와 싸우는 최전선에 서기를 원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실용주의적 철학은 훗날 그가 40개가 넘는 백신을 개발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레곤의 시선: 실천하는 지식인의 용기]
미생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기초 과학과 응용 과학 사이의 보이지 않는 위계가 존재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힐만은 그런 권위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지식이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진로를 고민하던 저에게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과학자의 가치는 논문의 인용 횟수가 아니라, 그로 인해 혜택을 받은 사람들의 숫자로 증명되는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1957년 아시아 독감: 예언자가 된 과학자

1957년, 힐만은 월터 리드 육군 연구소(Walter Reed Army Institute of Research)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뉴욕 타임스>에서 홍콩의 아이들이 독감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짧은 기사를 읽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무심코 넘긴 기사였지만, 힐만의 직감은 경보를 울렸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팬데믹의 징조다."
그는 즉시 군 당국을 설득해 감염된 군인의 가검물을 입수했고, 밤샘 연구 끝에 이 바이러스가 기존의 독감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변종(H2N2)임을 밝혀냈습니다. 당시 미국 인구는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었습니다.
힐만은 즉시 백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규제 당국의 관료주의를 우회하고, 제약회사들에 직접 전화를 걸어 "수백만 명이 죽을 것이다. 당장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고 호통쳤습니다. 닭의 유정란을 이용해 백신을 대량 생산하는 체계를 급조했고, 가을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4천만 회분의 백신을 준비했습니다. 그해 겨울 아시아 독감이 미국을 강타했지만, 힐만의 백신 덕분에 사망자 수는 예상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레곤의 시선: 통찰력과 결단력의 조화]
단신 기사 하나에서 팬데믹을 예견한 그의 통찰력도 놀랍지만, 시스템의 한계를 뛰어넘어 직접 생산을 지휘한 그의 결단력은 존경스럽습니다. 미생물학적 지식은 실험실 안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라,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게 적용될 때 빛을 발합니다. 그는 단순한 연구자가 아니라 위기 관리의 리더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릴 린(Jeryl Lynn) 이야기: 딸의 목구멍에서 채취한 역사

모리스 힐만의 가장 유명하고도 감동적인 일화는 바로 '볼거리(유행성 이하선염)' 백신 개발입니다. 1963년 어느 날 밤, 그의 다섯 살 난 딸 제릴 린이 목이 붓고 열이 나며 잠에서 깼습니다. 전형적인 볼거리 증상이었습니다.
보통의 아버지라면 물수건을 대주며 간호했겠지만, 힐만은 달랐습니다. 그는 즉시 연구소로 달려가 면봉과 배지를 챙겨 왔습니다. 그리고 아픈 딸의 목구멍에서 검체를 채취하고, 한밤중에 연구소로 돌아가 바이러스를 분리했습니다.
그는 딸에게서 얻은 바이러스를 닭의 배아 세포에서 수십 차례 계대 배양하며 독성을 약화시켰습니다. 약 3년 뒤, 이 약독화된 바이러스는 백신이 되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백신의 첫 번째 접종 대상자 중 한 명은 바로 힐만의 둘째 딸인 크리스틴이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아이들이 맞고 있는 MMR(홍역, 볼거리, 풍진) 백신 속의 볼거리 바이러스 균주 이름은 바로 '제릴 린 스트레인(Jeryl Lynn strain)'입니다. 딸의 아픔을 통해 전 세계 아이들의 아픔을 막아낸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이름입니다.
[레곤의 시선: 과학자이자 아버지로서의 삶]
냉철한 과학자였던 그도 딸의 병상 앞에서는 누구보다 뜨거운 아버지였습니다. 자신의 딸에게서 얻은 바이러스로 백신을 만들고, 그것을 또 다른 딸에게 맞히는 확신. 그것은 자신의 연구에 대한 완벽한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릴 린 균주는 미생물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이름 중 하나일 것입니다.
MMR 백신의 탄생: 세 가지 공포를 한 번에 끝내다

힐만은 단순히 새로운 백신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이들이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야 한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당시에는 홍역, 볼거리, 풍진 백신을 각각 따로 맞아야 했습니다.
그는 이 세 가지 약독화 생백신을 하나로 섞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하지만 생백신끼리 섞었을 때 서로 간섭을 일으켜 효과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생길 위험이 있었습니다. 홍역 바이러스가 너무 강하면 풍진 바이러스가 죽어버리고, 볼거리 바이러스가 약하면 면역이 생기지 않는 등 미묘한 밸런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힐만은 수많은 비율 조정과 임상 시험을 거쳐, 세 가지 바이러스가 공존하면서도 각각 강력한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황금 비율을 찾아냈습니다.
1971년, 마침내 MMR 백신이 승인되었습니다. 이 백신 하나로 전 세계의 어머니들은 자녀가 고열에 시달리거나 기형아를 낳을 걱정(풍진), 뇌수막염에 걸릴 걱정(홍역, 볼거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MMR 백신은 공중 보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혼합 백신으로 평가받습니다.
[레곤의 시선: 사용자를 생각하는 과학]
힐만의 연구는 철저히 '수요자 중심'이었습니다. 그는 백신의 효능뿐만 아니라, 접종의 편의성과 보급률까지 고민했습니다. 주사 횟수를 줄이는 것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접종률을 높여 집단 면역을 달성하는 핵심 전략입니다. 미생물학적 지식을 공중 보건학적 관점으로 확장한 그의 시야는 오늘날 백신 정책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B형 간염 백신: 최초의 항암 백신
힐만의 업적 중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된 것은 B형 간염 백신입니다. 당시 B형 간염은 간경화와 간암의 주원인이었지만,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것이 불가능해 백신 개발이 난항을 겪고 있었습니다.

힐만은 대담한 발상을 합니다. 바이러스를 직접 배양하는 대신, 감염된 사람의 혈액 속에 떠다니는 바이러스 껍데기(표면 항원)를 모아 정제해서 백신으로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혈액 속에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다면 백신이 아니라 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펩신, 요소, 포르말린 등 3중 처리 과정을 통해 완벽하게 바이러스를 불활성화시키는 공정을 개발했습니다.더 나아가 그는 이후 유전 공학 기술을 도입하여, 효모(Yeast)에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넣어 항원만 대량 생산하는 '유전자 재조합 백신(Recombinant vaccine)'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습니다. B형 간염 예방은 곧 간암 예방을 의미했기에, 이는 인류 최초의 '항암 백신'으로 불립니다.
[레곤의 시선: 끊임없는 혁신]
혈액 유래 백신에서 유전자 재조합 백신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고전적인 세균학에서 현대적인 분자생물학으로 넘어가는 의학사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60대의 나이에도 안주하지 않고 최신 유전 공학 기술을 받아들여 더 안전한 백신을 만들어낸 힐만의 학습 능력과 유연한 사고는, 급변하던 생명공학 트렌드 앞에서 두려워하던 저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SV40 오염 사건과 정직한 대처
힐만의 연구 인생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60년, 그는 소아마비 백신을 만드는 데 쓰이는 원숭이 신장 세포가 'SV40(Simian Virus 40)'이라는 원숭이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햄스터에게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소아마비 백신은 이미 수천만 명에게 접종된 상태였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엄청난 패닉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힐만은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상부에 보고하고, 오염되지 않은 세포를 찾는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녹색 원숭이(African green monkey)의 신장 세포가 SV40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백신 생산 공정을 전면 교체했습니다.
비록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동료 과학자들에게 "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결국 그의 경고 덕분에 백신 생산 공정은 더욱 엄격해졌고 안전해졌습니다.
[레곤의 시선: 과학자의 양심]
자신이 몸담은 산업계에 불리할 수 있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 그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힐만은 "과학적 사실 앞에 타협은 없다"는 원칙을 지켰습니다. 미생물학 실험을 하다 보면 가끔 예상치 못한, 혹은 원치 않는 결과(오염 등)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를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분석하고 대처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자가 가져야 할 제1의 덕목임을 그는 보여주었습니다.
잊혀진 거인: 그는 왜 노벨상을 받지 못했나?
모리스 힐만은 20세기 의학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지만, 노벨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노벨상은 주로 기초 과학의 새로운 원리를 발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경향이 있고, 힐만처럼 기존의 원리를 이용해 실용적인 제품(백신)을 개발한 산업계 과학자에게는 인색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거침없는 성격과 독설, 그리고 학계가 아닌 제약회사(Merck) 소속이라는 점도 그가 저평가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힐만은 상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자신의 사무실에 트로피 대신 자신이 개발한 백신 상자들을 진열해 두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로버트 갤로(HIV 발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인류의 건강에 이렇게 큰 공헌을 한 예는 역사상 다시 없을 것이다."
[레곤의 시선: 진정한 명예란 무엇인가]
노벨상 메달은 박물관에 남지만, 힐만의 유산은 우리 몸속의 항체(Antibody)로 남아있습니다. 전 세계 수십억 인구의 혈관 속에 그의 노력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까요? 대학 졸업식에서 저는 화려한 명성보다 묵묵히 세상을 이롭게 하는 힐만과 같은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는 상이 증명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진정한 거인입니다.
자주 물어보는 질문 (FAQ)
Q: 모리스 힐만이 개발한 가장 대표적인 백신은 무엇인가요?
A: 홍역, 볼거리, 풍진을 한 번에 예방하는 MMR 혼합 백신이 가장 대표적이며, 이 외에도 B형 간염, A형 간염, 수두 등 40여 종의 백신을 개발했습니다.
Q: '제릴 린(Jeryl Lynn) 균주'라는 이름에는 어떤 사연이 있나요?
A: 힐만이 볼거리에 걸린 자신의 딸 제릴 린의 목구멍에서 직접 채취한 바이러스를 약독화하여 백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Q: 1957년 아시아 독감 팬데믹 당시 힐만은 어떻게 대처했나요?
A: 홍콩의 독감 유행 기사를 접한 후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임을 직감하고, 군 당국과 제약회사를 설득해 가을 학기 시작 전 4천만 회분의 백신을 미리 준비하여 피해를 최소화했습니다.
Q: B형 간염 백신이 왜 '최초의 항암 백신'이라고 불리나요?
A: B형 간염 바이러스는 간암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인데, 이 백신을 통해 간염을 예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간암 발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Q: 힐만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으로 알려져 있나요?
A: 노벨상이 주로 기초 과학 원리 발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힐만처럼 제약회사(산업계)에서 실용적인 제품 개발에 매진한 과학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엄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레곤이 보내는 편지: 백신 반대론의 시대에 부쳐
대학을 졸업한 2000년만 해도 우리는 과학이 모든 질병을 정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26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역설적인 상황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힐만이 평생을 바쳐 없애버린 질병들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백신의 필요성을 의심하고 거부하는 '백신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힐만이 개발한 홍역 백신 덕분에 홍역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홍역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백신의 역설'입니다.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그 필요성마저 잊게 만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평범한 일상, 마스크 없이 친구를 만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학교에 가는 이 기적 같은 일상이 바로 모리스 힐만의 선물입니다. 오늘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이 아이가 볼거리에 걸리지 않고, 홍역으로 열이 펄펄 끓지 않을 수 있는 것은, 60년 전 어느 날 밤 아픈 딸의 목구멍을 닦아내던 한 아버지의 집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방패를 만들어준, 괴팍하지만 따뜻했던 그 할아버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참고 문헌]
- Offit, P. A. (2007). Vaccinated: One Man's Quest to Defeat the World's Deadliest Diseases. Smithsonian Books.
- (모리스 힐만의 전기이자 그의 업적을 가장 상세하게 다룬 책. 폴 오핏 박사가 직접 인터뷰하고 저술함.)
- Hilleman, M. R. (2000). "Vaccines in historic evolution and perspective: a narrative of vaccine discoveries". Vaccine, 18(15), 1436-1447.
- (힐만 본인이 직접 쓴 백신 개발의 역사와 회고에 관한 리뷰 논문.)
- Buynak, E. B., & Hilleman, M. R. (1966). "Live attenuated mumps virus vaccine. 1. Vaccine development". Proceedings of the Society for Experimental Biology and Medicine, 123(3), 768-775.
- (제릴 린 균주를 이용한 볼거리 백신 개발에 관한 원전 논문.)
- Hilleman, M. R., et al. (1968). "Live, attenuated rubella virus vaccin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79, 300-303.
- Galambos, L., & Sewell, J. E. (1995). Networks of Innovation: Vaccine Development at Merck, Sharp & Dohme, and Mulford, 1895-1995. Cambridge University Press.
- Newman, L. (2005). "Maurice Hilleman". BMJ, 330(7498), 1028.
- (모리스 힐만의 부고 기사로, 그의 생애와 업적을 요약함.)
'[우연한 발견: 항생제의 역사] – 약학 미생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노벨상으로 본 항생제 연구: 항생제 개발로 인류 수명을 늘린 주역들 총정리 (0) | 2026.08.07 |
|---|---|
| 르네 뒤보: 토양 미생물에서 최초의 상업용 항생제 '티로트리신'을 찾아내다 (0) | 2026.08.05 |
| 도로시 호지킨: 페니실린과 비타민 B12의 구조를 밝혀낸 X선 결정학의 대가 (0) | 2026.08.01 |
| 항생제 골든 에이지: 도마크, 플레밍, 왁스먼이 연 '기적의 약' 전성시대 (0) | 2026.07.27 |
| 폴 에를리히: 특정 균만 공격하는 '마법의 탄환(살바르산)' 개념 (0) | 2026.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