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발견: 항생제의 역사] – 약학 미생물학

하워드 플로리 & 에른스트 체인 :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과 실용화 공로

do-legon 2026. 7. 23. 11:04

하워드 플로리와 에른스트 체인은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을 실제 환자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약물로 완성시킨 인물들입니다. 플레밍이 곰팡이에서 항균 물질의 존재를 처음 확인했다면, 플로리와 체인은 이를 분리·정제하고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과학적·공학적 해법을 찾아냈습니다. 1941년 최초의 인체 임상시험에 성공하며 페니실린의 경이로운 효능을 입증했고,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많은 부상병의 목숨을 구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실질적인 구원의 도구로 바꾼 이들의 협력은 현대 미생물학과 제약 산업 역사에서 항생제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위대한 쾌거로 평가받습니다.


잊혀질 뻔한 발견 : 플레밍의 한계와 옥스퍼드 팀의 만남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인 하워드 플로리(왼쪽)와 에른스트 체인(오른쪽). 이들은  미생물학 적 발견에 불과했던 페니실린을 정제하고 대량 생산하여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 출처: 노벨 재단(The Nobel Foundation) 아카이브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은 푸른곰팡이 주변에서 포도상구균이 자라지 못하는 현상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플레밍은 화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곰팡이가 내뿜는 살균 물질인 '페니실린'을 순수한 형태로 추출하거나 정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또한 이 물질은 매우 불안정하여 금방 분해되었고, 대량으로 배양할 방법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플레밍의 논문은 의학계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도서관의 먼지 쌓인 서가로 밀려났습니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3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 출신의 병리학자 하워드 플로리와 독일에서 나치를 피해 망명 온 천재 화학자 에른스트 체인이 옥스퍼드 대학에서 만났습니다. 이들은 항균 물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플레밍의 낡은 논문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를 구원할 미생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협업의 시작이었습니다.

[레곤의 의견: 미완성 교향곡의 완성을 위해]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은 위대했지만, 그것은 악보의 첫 소절만 쓰인 미완성 교향곡이었습니다. 10년 넘게 도서관에 잠들어 있던 이 악보를 꺼내어, 하워드 플로리와 에른스트 체인이라는 지휘자와 연주자가 비로소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완성해 냈습니다. 과학사는 '발견한 자'만을 기억하려 하지만, 진정한 영웅은 그것을 '쓸모 있게 만든 자'들입니다.


에른스트 체인의 화학적 통찰 : 페니실린 정제의 돌파구

에른스트 체인은 매우 까다롭고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화학적 분석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였습니다. 그는 페니실린이 왜 그렇게 쉽게 파괴되는지 연구했습니다. 당시의 기술로는 이 불안정한 물질을 농축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지만, 체인은 '동결 건조' 방식과 산도(pH) 조절을 통해 마침내 아주 적은 양이지만 순수한 페니실린 가루를 추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의 연구는 페니실린이 단순한 곰팡이 추출물이 아니라, 특정 화학 구조를 가진 강력한 화합물임을 증명했습니다. 체인의 이러한 화학적 성과가 없었다면 페니실린은 여전히 '흥미로운 자연 현상'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는 미생물학적 현상을 화학적 실체로 변환시킨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워드 플로리의 결단 : 최초의 동물 실험과 놀라운 결과

화학적 정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팀의 리더였던 하워드 플로리는 이 물질이 실제로 생체 내에서 세균을 죽일 수 있는지 시험하기로 합니다. 1940년 5월, 역사적인 '8마리의 생쥐 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플로리는 8마리의 생쥐에게 치명적인 용량의 연쇄상구균을 주입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4마리에게만 페니실린을 투여했습니다.

결과는 경이로웠습니다. 페니실린을 받지 못한 4마리의 쥐는 16시간 안에 모두 죽었지만, 페니실린을 투여받은 4마리는 모두 살아남았습니다. 플로리는 이 결과를 보고 "이것은 기적이다"라고 확신했습니다. 이 짧은 실험은 미생물학이 실험실을 넘어 임상 의학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레곤의 의견: 8마리 생쥐의 기적]
단 8마리의 생쥐로 진행된 실험치고는 그 결과가 너무나 극적이었습니다. 페니실린을 맞은 4마리는 살고, 못 맞은 4마리는 죽었다. 이 단순명료한 결과 앞에 더 이상의 통계적 분석은 필요 없었을 겁니다. 플로리가 "이건 기적이다"라고 외쳤을 때, 그는 이미 인류의 미래가 바뀔 것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인체 투여의 시작 : 알버트 알렉산더와 절반의 성공

페니실린 생산이 비록 느리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옥스퍼드 연구소는 이제 페니실린 공장이 되었다. '페니실린 걸스'로 알려진 여섯 명의 여성이 발효액을 관리하고 매주 소량의 귀중한 페니실린을 추출하는 일을 맡았다.

1941년 초, 플로리와 체인은 첫 번째 인체 임상 시험에 도전합니다. 대상자는 면도하다 상처가 나 온몸에 염증이 퍼져 죽어가던 경찰관 알버트 알렉산더였습니다. 당시 그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옥스퍼드 팀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페니실린을 그에게 투여했습니다.

투여 직후 환자의 상태는 기적처럼 호전되었습니다. 열이 내리고 식욕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페니실린이 몸 밖으로 너무 빨리 배출되어 약이 바닥난 것입니다. 플로리 팀은 심지어 환자의 소변을 받아 거기서 페니실린을 다시 정제해 재투여할 정도로 절박했지만, 결국 약이 모자라 환자는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환자는 살리지 못했지만, 이 사건은 페니실린이 인체에 독성이 없으며 강력한 치유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했습니다. 이때부터 플로리의 목표는 단 하나, '대량 생산'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미국으로의 여정 : 거대 산업과의 만남

당시 영국은 독일의 공습을 받는 전쟁터였습니다. 연구 자금은 부족했고, 공장은 폭격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플로리는 영국 내에서의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연구원 노먼 히틀리와 함께 페니실린 곰팡이 배양액을 자신의 코트에 바른 채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혹시 모를 검문에 대비하고 균주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필사의 조치였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피오리아의 북부 지역 연구소(NRRL)에 도착한 플로리는 미국의 거대 제약 자본과 기술력을 만납니다. 여기서 미생물학은 공학적 기술과 결합하여 '대량 생산 공정'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멜론 곰팡이와 딥 탱크 배양 : 생산량의 기적적 증대

페니실린 생산의 핵심 균주인 페니실리움 크리소게눔. 1940년대 미국 피오리아의 시장에서 발견된 '썩은 멜론'에서 추출한 이 균주는 현대  미생물학 과 제약 산업의 판도를 바꾼 역사적인 주인공이다.

미국 연구진과 플로리는 더 강력한 페니실린을 내뿜는 곰팡이를 찾기 위해 전 세계에서 곰팡이 샘플을 수집했습니다. 그러던 중 시장에서 파는 썩은 멜론에서 발견된 '페니실리움 크리소게눔(Penicillium chrysogenum)' 균주가 기존 플레밍의 균주보다 수백 배 많은 페니실린을 생산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또한, 기존에는 넓은 쟁반에 곰팡이를 띄워 키우는 방식이었으나, 미국 공학자들은 거대한 탱크 안에서 공기를 불어넣으며 액체 속에서 곰팡이를 키우는 '심부 배양법(Deep-tank fermentation)'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적 혁신 덕분에 페니실린 생산량은 수천 배, 수만 배로 뛰어올랐습니다. 전쟁 중 상처를 입은 병사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이 확보된 것입니다.

[레곤의 의견: 썩은 멜론이 구한 세상]
시장 바닥에 굴러다니던 썩은 멜론에서 인류를 구할 슈퍼 곰팡이를 찾아내다니! 그리고 곰팡이를 거대한 탱크(Deep tank)에서 키우는 미국의 공학 기술이 더해져, 페니실린은 '실험실의 금'에서 '공장의 빵'처럼 흔하고 저렴한 약이 되었습니다. 과학과 공학, 그리고 우연이 빚어낸 최고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과 인류를 향한 헌신

전장의 병사를 구한 기적의 약 페니실린 그리고 미국의 산업적 지원이 결합하여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Mass Production)이 실현된 과정을 보여주는 당시의 광고

1945년, 알렉산더 플레밍, 하워드 플로리, 에른스트 체인 세 사람은 페니실린 발견과 실용화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합니다. 플로리와 체인의 공로가 없었다면 플레밍의 발견은 의학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전 세계가 인정한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하워드 플로리의 태도였습니다. 그는 페니실린 제조 공정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적의 약은 인류의 자산이며, 누구나 저렴하게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이타심 덕분에 페니실린은 전 세계로 빠르게 보급될 수 있었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레곤의 의견: 특허 없는 선물]
만약 플로리가 페니실린 제조법에 특허를 걸었다면 그는 억만장자가 되었겠지만, 수많은 가난한 환자들은 약을 구하지 못해 죽었을 겁니다. "이 약은 인류를 위해 쓰여야 한다"며 특허를 포기한 그의 결정은, 노벨상 메달보다 더 빛나는 훈장입니다. 진정한 과학자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라는 것을 그가 보여주었습니다.


현대 미생물학에 남긴 유산 : 항생제 시대의 개막

플로리와 체인의 성공은 이후 다른 항생제 개발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토양 미생물에서 스트렙토마이신을 찾아내고, 다양한 세균으로부터 항생 물질을 추출하는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는 미생물학이 순수 과학을 넘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응용 과학으로 자리매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감염병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의료 환경은 이들의 옥스퍼드 실험실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들이 정립한 미생물 배양 및 물질 정제 기술은 현대 바이오 의약품 산업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자주 물어보는 질문 (FAQ)

Q: 알렉산더 플레밍과 플로리·체인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가요?
A: 플레밍이 페니실린이라는 물질을 우연히 '발견'했다면, 플로리와 체인은 이 불안정한 물질을 안정적으로 '추출'하고 '정제'하여 실제 치료제로 쓸 수 있게 '개발'한 주역들입니다.

Q: 페니실린 정제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A: 페니실린은 매우 불안정하고 극미량만 생산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양을 얻기 위해 수천 리터의 배양액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동네의 모든 배드팬(침상용 변기)을 수거해 배양 용기로 쓰는 등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Q: 1941년 최초의 인체 임상시험 결과는 어땠나요?
A: 찰스 플레처라는 경찰관이 첫 대상자였는데, 투여 직후 상태가 급격히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페니실린 양이 부족해 치료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결국 사망했는데,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페니실린의 효능과 대량 생산의 절실함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Q: 왜 이들은 영국이 아닌 미국에서 대량 생산을 시작했나요?
A: 당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화마에 휩싸여 대규모 공장을 지을 여력이 없었습니다. 플로리는 미국으로 건너가 옥수수 침출액을 이용한 대량 배양법을 도입하며 산업적 생산에 성공했습니다.

Q: 이들의 발견이 현대 미생물학에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요?
A: 미생물이 만든 물질을 정제해 질병을 치료하는 항생제의 개념을 확립했습니다. 이 공로로 1945년 플레밍과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으며, 이는 인류의 평균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에필로그: 발견보다 위대한 실천의 힘

알렉산더 플레밍의 '우연한 발견'은 위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씨앗을 가져와 척박한 환경 속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 하워드 플로리와 에른스트 체인의 '치열한 실천'은 그보다 더 숭고합니다. 과학적 발견이 실제 인류의 행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전문가의 협업과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들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가 누리는 현대 의학의 혜택 뒤에 숨겨진 미생물학 영웅들의 노고를 기억하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과학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과정이 아니라, 그 지식으로 세상을 구하는 과정임을 플로리와 체인은 증명했습니다.


참고문헌

1. 페니실린의 치료 효과 입증 (Animal Experiments)

  • Chain, E., Florey, H. W., Gardner, A. D., Heatley, N. G., Jennings, M. A., Orr-Ewing, J., & Sanders, A. G. (1940). Penicillin as a Chemotherapeutic Agent. The Lancet, 236(6104), 226–228.
    • 설명: 본문에서 언급된 '8마리 생쥐 실험' 결과를 세상에 알린 역사적인 논문입니다. 옥스퍼드 팀이 정제된 페니실린이 동물 체내에서 연쇄상구균 감염을 치료할 수 있음을 최초로 증명하였습니다.

2. 인체 임상 시험과 정제 기술 (Human Trials & Purification)

  • Abraham, E. P., Chain, E., Fletcher, C. M., Gardner, A. D., Heatley, N. G., Jennings, M. A., & Florey, H. W. (1941). Further Observations on Penicillin. The Lancet, 238(6155), 177–189.
    • 설명: 본문에 등장하는 경찰관 알버트 알렉산더를 포함한 초기 인체 임상 시험 사례와 에른스트 체인의 화학적 정제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 문헌입니다. 인체에 대한 페니실린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했습니다.

3. 대량 생산과 미국에서의 연구 (Mass Production)

  • Raper, K. B. (1946). The Development of Improved Penicillin-Producing Molds. 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48(2), 41–56.
    • 설명: 본문 후반부의 '썩은 멜론 곰팡이(Penicillium chrysogenum)' 발견과 심부 배양법(Deep-tank fermentation) 개발 과정을 다룬 논문입니다. 미국 NRRL 연구소에서의 균주 개량 및 생산량 증대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4. 옥스퍼드 팀의 업적과 역사적 평가 (Historical Review)

  • Lax, E. (2004). The Mold in Dr. Florey's Coat: The Story of the Penicillin Miracle. Henry Holt and Co.
    • 설명: 하워드 플로리, 에른스트 체인, 노먼 히틀리 등 옥스퍼드 팀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미국으로의 여정, 그리고 플레밍의 그늘에 가려졌던 그들의 공로를 재조명한 논픽션 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