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생물학] - 한국 미생물학의 역사와 트랜드

윤유선, 전종휘 - 방역의 최전선, 국립보건연구원의 초기 분투기

do-regon 2026. 7. 21. 15:39

3년간의 전쟁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위생 인프라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 속에서 윤유선 박사전종휘 박사는 대한민국 예방의학과 임상 감염학을 각각 대표하며 해방 후 대한민국 방역의 기틀을 닦은 주역입니다. 윤유선 박사가 국립보건원장으로서 정책과 백신을 공급하면, 전종휘 박사가 자문관이자 야전사령관으로 현장을 지휘하며 방역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이 두사람은 '행정과 현장'이라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완벽한 호흡을 맞추며 국립보건연구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프롤로그: 통제된 실험실과 통제 불능의 현장

코로나19 팬데믹 기간동안 우리는 국가의 방역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누리는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은 통제된 실험실 안에서만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성능 좋은 현미경조차 드물었던 광복과 전쟁 직후, 대한민국의 보건 환경은 수많은 변수가 날뛰는 통제 불능의 현장 그 자체였습니다.

이 거대한 혼란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두 가지 축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는 참혹한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어 병원균의 정체를 밝혀내는 임상적 투지였고, 다른 하나는 이를 후방에서 지원하며 국가 단위의 방역망을 짜는 치밀한 행정력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뜨거운 야전사령관' 전종휘 박사와 '냉철한 전략가' 윤유선 원장의 유기적인 협력이 어떻게 대한민국 초기 방역의 중추인 국립보건연구원을 바로 세웠는지 그 역사적 발자취를 세밀하게 짚어보겠습니다.


두 거장의 만남: 냉철한 전략가와 뜨거운 야전사령관

전쟁의 폐허 위에서 대한민국의 위생 인프라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습니다. 식수원이 오염된 도시에는 장티푸스와 콜레라가 창궐했고, 여름이면 뇌염이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방역은 현장의 전종휘 박사와 행정의 윤유선 원장이라는 두 튼튼한 기둥을 중심으로 구축되었습니다.

'뜨거운 야전사령관'  전종휘 박사(왼쪽) 와 '냉철한 전략가'  윤유선 박사(오른쪽)  / 원본이미지: 의사신문

 

비교 항목 전종휘 (뜨거운 야전사령관) 윤유선 (냉철한 전략가)
출생~사망 1913~2007 1910~1987
전문 분야 임상 감염학, 전염병 내과학 공중보건학, 예방의학, 보건 행정
방역의 역할 전염병 발생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치료하고, 사체 부검 등을 통해 원인 미생물(바이러스, 세균)을 분리 규명 국립보건원 통합 및 행정 시스템 구축, 백신 생산 및 국가 검정 인프라 확립 (무기 조달)
주요 직책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대한감염학회 회장 통합 국립보건원 초대 원장, 보건사회부 의정국장
핵심 업적 일본뇌염 바이러스 국내 최초 분리, 1946년 및 1963년 콜레라 방역 현장 지휘 4개 보건 기관 통합(국립보건원 출범), BCG 백신 등 국가 예방접종망 설계

한 명은 쏟아지는 환자들을 마주하며 병원균을 직접 분리해 낸 임상과 미생물학의 최전선에 서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국가 기관을 통합하고 백신 보급망을 짜며 거시적인 예방의학의 틀을 완성했습니다. 이 두 선구자의 역할 분담과 유기적인 협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초기 대한민국의 방역 시스템이 비로소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뜨거운 야전사령관 전종휘: 참혹한 현장에서 바이러스를 추적하다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서울은 몰려든 피란민들로 인해 전염병의 거대한 배양 접시와 같았습니다. 전종휘 박사는 경성부립순화병원과 서울대 의대 전염병 병동에서 매일같이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을 온몸으로 받아냈습니다. 그는 책상 앞의 연구자가 아니라, 환자의 피와 토사물이 튀는 현장에서 전염병과 맞서 싸운 진정한 '야전사령관'이었습니다.

당시 의학계와 국민들을 가장 공포에 떨게 한 질환은 '일본뇌염'이었습니다. 모기를 매개로 전파되는 이 병은 고열과 뇌 압박 증상을 일으키며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국내에서는 원인 바이러스의 실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종휘 박사는 적의 정체를 명확히 알아야 방역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사체 훼손을 극도로 꺼리던 당시의 굳건한 사회적 금기를 깨고, 유가족들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사망한 아이의 부검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현장에서 획득한 사망자의 뇌 조직을 갈아 실험실로 가져간 그는 쥐의 뇌에 이를 주입하는 고된 실험을 반복한 끝에, 마침내 국내 최초로 일본뇌염 바이러스를 분리해 내는 데 성공합니다. 병실에서 환자의 숨소리를 살피고, 곧바로 실험실로 달려가 미생물을 배양하던 그의 행보는 임상 의학과 기초 과학이 결합된 한국 감염학의 위대한 첫걸음 이었습니다.


냉철한 전략가 윤유선: 방역의 시스템과 무기(백신)를 구축하다

전종휘 박사가 최전선에서 병원균이라는 적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을 때, 후방에서 방역이라는 거대한 전쟁의 지휘소와 보급망을 설계하고 있던 인물은 바로 윤유선 원장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선진 공중보건학을 수학하고 돌아온 그는, 전염병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파편화된 국가의 연구 기관들을 강력한 하나의 지휘 체계 아래로 모아야 한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습니다.

1963년, 윤유선 원장의 주도 아래 기존에 흩어져 있던 국립보건원, 국립방역연구소, 국립화학연구소, 국립생약시험소 등 4개의 보건 핵심 기관이 마침내 하나의 '통합 국립보건원(현 국립보건연구원의 전신)'으로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초대 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질병의 진단, 백신의 검정, 수질 및 식품의 위생 검사 등 방역에 필요한 모든 과학적 역량을 국립보건원이라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집중시켰습니다.

특히 그는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궁극적인 무기가 '백신의 자급자족'에 있음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해외 원조에만 의존하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국립보건원 산하에 백신 생산 시설을 정비하고 품질을 검증하는 국가 표준 규격을 엄격하게 도입했습니다. 현장의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결핵(BCG), 두창, 콜레라 백신의 체계적인 접종망을 짠 것은 모두 윤유선 원장이 구축한 치밀한 시스템 덕분이었습니다.


유기적 협력의 결정체: 콜레라 대유행을 막아낸 두 축

1961년 전북 남원에서 장티푸스 방역반이 활동하는 장면 / 출처: 합동통신

1946년과 1963년에 발생한 전국적인 콜레라 대유행은 현장의 투지와 후방의 시스템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오염된 식수를 통해 쉼표 모양의 비브리오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이 삽시간에 퍼져나가자, 전종휘 박사는 방역 현장의 총책임자로 뛰어들었습니다.

이 시기 전종휘 박사에 얽힌 처절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쏟아지는 발진티푸스와 콜레라 환자들을 밤낮없이 돌보며 병원균의 감염 경로를 추적하던 중, 스스로 치명적인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난 그는, 현장의 경험을 통해 "환자를 격리하고 약을 주는 것만으로는 유행을 막을 수 없다. 원인균의 이동 경로인 우물과 하천을 통제하고 상수도를 설치해야 한다"는 실증적인 데이터를 뼈저리게 확인했습니다.

야전사령관 전종휘가 가져온 이 생생하고 절박한 현장의 미생물학적 데이터는, 즉각 전략가 윤유선 원장이 이끄는 국립보건원의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윤 원장은 현장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수질 검사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오염 지역에 투입할 콜레라 백신과 소독제를 긴급하게 조달하여 전국의 보건소로 배포하는 물류망을 가동했습니다. 전종휘가 현장에서 병원균의 약점과 경로를 파악하면, 윤유선은 국립보건원의 행정력과 백신이라는 무기를 동원해 감염의 사슬을 물리적으로 끊어낸 것입니다. 이 두 거장의 유기적인 역할 분담은 대규모 전염병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레곤의 생각]

우리도 2020년에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한적이 있습니다. 발생초기부터 감염을 막기 위해 사회적거리두기와 손소독, 마스크 착용등의 많은 노력을 했지만 전염병이 퍼저나가는걸 막는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하던 1960년대의 대한민국 전체를 대상으로 오염원(병원균)을 통제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은, 통제 불가능한 거대한 야외 배양 접시와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이 역사를 되짚어보면 기초 과학과 행정 시스템의 결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있습니다.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균의 특성을 파악한 전종휘 박사의 임상 데이터가 없었다면 윤유선 원장의 방역 정책은 방향을 잃었을 것이고, 윤유선 원장이 백신 인프라와 국립보건원이라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다면 현장의 의사들은 무기 없이 적과 싸우다 쓰러졌을 것입니다. 과학적 사실 규명과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보건 행정의 융합은 현대 방역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이상적인 모델이라 생각합니다.


두 선구자가 남긴 주요 학술 및 정책적 성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고 대한민국 감염학과 공중보건의 학술적 기틀을 마련한 두 인물의 주요 저서와 연구 성과입니다.

『전염병』 (단행본)

  • 저자: 전종휘
  • 출판/발행: 국내 의학계 출간 (1960년대)
  • 내용: 서양의 교과서에만 의존하던 당시의 의학 교육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전종휘 박사가 한국적 상황에 특화된 전염병의 발생 양상과 임상적 특징을 집대성한 역작입니다. 장티푸스, 말라리아, 유행성 출혈열 등 한국 특유의 토착 전염병에 대한 방대한 임상 데이터와 미생물학적 진단 지침을 수록하여 후학 양성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한국 뇌염의 임상적 관찰

  • 저자: 전종휘
  • 게재지: 박사학위 부논문 및 일본 병리학회지 (1940년대 중반)
  • 내용: 한국 사회에서 매년 반복되던 뇌염의 원인이 일본뇌염 바이러스임을 규명하고, 감염 환자들의 임상적 증후와 병리학적 변화를 꼼꼼하게 기록한 연구입니다. 사체 부검을 통한 바이러스의 분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여 한국 신경계 감염 질환 연구의 독자적인 길을 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결핵현상의 제난관

  • 저자: 윤유선
  • 게재지: 결핵(Tuberculosis) 학술지 (1954년)
  • 내용: 전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치명적인 사망 원인이었던 결핵의 역학적 실태를 분석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보건 행정의 난맥상을 진단한 논문입니다. 백신(BCG) 보급의 필요성과 함께 정부 차원의 요양 시설 확충 및 공중보건 인프라의 체계적인 조직화를 역설한 예방의학적 정책 제언입니다.

자주 물어보는 질문 (FAQ)

Q. 초기 국립보건원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A. 1963년 윤유선 원장의 치밀한 기획 아래, 방역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에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국립보건원, 국립방역연구소, 국립화학연구소 등 보건 관련 기관들을 하나의 통합된 '국립보건원'으로 합병하여 출범시켰습니다.

Q. 전종휘 박사와 윤유선 원장의 역할은 어떻게 달랐나요?
A. 전종휘 박사는 전염병 병동과 현장을 누비며 환자를 치료하고 원인균을 분석한 '야전사령관'이었다면, 윤유선 원장은 국립보건원이라는 시스템을 만들고 백신이라는 무기를 현장에 공급한 '전략가'로서 두 사람의 역할이 완벽하게 보완되었습니다.

Q. 전종휘 박사의 일본뇌염 바이러스 분리가 왜 중요한가요?
A. 적의 실체를 알아야 방어할 수 있듯이, 바이러스를 직접 분리해 낸 것은 단순한 임상 관찰을 넘어 병원체의 생물학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한 성과입니다. 이는 훗날 한국이 독자적인 백신 개발과 역학적 모기 방제 대책을 세우는 핵심 근거가 되었습니다.

Q. 콜레라 방역에서 수도 시설의 중요성이 강조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콜레라균은 주로 오염된 식수와 하천을 통해 대규모로 확산하는 수인성 전염병입니다. 현장의 전종휘 박사는 환자 치료만으로는 유행을 막을 수 없음을 파악했고, 윤유선 원장은 이 의견을 수렴하여 수질 위생 강화와 상수도 보급이라는 근본적인 방역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Q. 백신 자급자족이 1960년대 방역에서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당시 한국은 해외 원조 백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대규모 전염병 유행 시 제때 백신을 확보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윤유선 원장이 국립보건원 산하에 국가 검정 체계와 자체 생산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예방 접종망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미생물학의 두 날개, 현장과 시스템

질병의 고통이 가득했던 시대, 전종휘 박사는 땀과 피가 튀는 현장에서 돋보기와 메스를 들고 병원체의 정체를 밝혀낸 야전사령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윤유선 원장은 그 현장의 절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립보건원이라는 견고한 요새를 짓고 백신이라는 무기를 쥐여준 냉철한 전략가였습니다. 두 사람의 완벽한 역할 분담과 유기적인 협력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전염병의 공포를 이겨내고 현대적인 공중보건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할 수 있었던 핵심 토대는 두 선구자가 척박한 시대에 확립해 둔 '현장의 임상 의학'과 '거시적인 방역 시스템'의 유기적 결합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기 위해 실험실의 지식과 현장의 행동, 그리고 행정의 지혜를 모두 하나로 모았던 두 거장의 발자취는, 앞으로 대한민국 방역이 나아가야 할 가장 확고한 방향을 제시한다고 생각됩니다.


참고문헌

  1. 대한감염학회. "학회 연혁 및 초기 감염학의 발자취". 학회 아카이브. (한국 최초의 임상 감염학자 전종휘 박사의 일본뇌염 바이러스 분리 및 1946년, 1963년 콜레라 방역 현장 지휘 업적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자료)
  2.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국립보건연구원 50년사: 방역의 최전선에서 보건의료 연구의 중심으로". 공식 발간 백서. (1963년 보건 기관들을 통합하여 국립보건원을 출범시키고 백신 국가 검정 시스템을 구축한 윤유선 원장의 방역 행정 기획 과정을 상세히 정리한 역사 기록)
  3. 대한예방의학회. (2015). "한국 예방의학과 공중보건의 역사". 예방의학회지 특별호. (윤유선 원장의 공중보건학적 헌신과 전종휘 박사의 임상 역학조사가 어떻게 시너지를 내어 상하수도 인프라 개선 및 전염병 퇴치로 이어졌는지 분석한 문헌)
  4. 김종현. (1985). "한국에 있어서의 수인성 전염병의 역학적 고찰". 보건학논집. (전후 남한 지역에서 발생한 콜레라와 장티푸스 유행 당시, 임상 의사들과 보건 행정 당국 간의 협력 방역 조치 실태를 분석한 연구)
  5. 한국의학한림원. "전종휘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추모 논문집". (전종휘 박사의 『전염병』 교과서 집필과 환자 치료에 헌신한 일대기, 현장의 목소리를 보건 정책에 반영하고자 했던 노력을 기리는 학술 자료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