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데마르 하프킨 (Waldemar Haffkine): 인도에서 콜레라와 페스트 백신을 개발하여 수백만 명을 구한 '백신의 성자'
발데마르 하프킨은 19세기 말 인도에서 콜레라와 페스트(흑사병) 백신을 세계 최초로 대규모 보급하여 수백만 명을 구한 세균학자입니다. 러시아의 억압을 피해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연구를 시작한 그는 백신의 안전성을 입증하려고 자신의 몸에 병원균을 주사했습니다. 이후 인도로 건너가 현지인들의 불신을 극복하며 접종을 이끌었고, 인도 요리에 쓰이는 정제 버터를 이용해 독창적인 배양 기법을 고안하기도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생명체와의 사투
우리가 오늘날 첨단 바이오 기술과 항생제, 고도로 정제된 백신의 혜택을 당연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과거 맨몸으로 전염병의 소굴에 뛰어들어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웠던 선구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꼽히는 콜레라와 페스트(흑사병)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실험대에 올렸던 발데마르 하프킨의 헌신은 현대 의학사에 거대한 자취를 남겼습니다. 유럽의 안락한 연구실을 떠나 풍토병이 들끓던 인도의 척박한 오지에서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원해 낸 그의 드라마틱한 생애와 그가 이룩한 훌륭한 학문적 성과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분류 | 상세 정보 |
| 이름 | 발데마르 모르데카이 볼프 하프킨 (Waldemar Mordechai Wolff Haffkine) |
| 생몰연도 | 1860년 3월 15일 ~ 1930년 10월 26일 |
| 국적 및 직업 | 러시아 제국 태생 (프랑스, 영국, 인도 등에서 활동) / 세균학자, 면역학자 |
| 핵심 업적 | 세계 최초 인체 대상 콜레라 약독화 백신 및 페스트 사백신 개발, 대규모 접종 주도 |
| 주요 저서 및 논문 | 「Le Choléra asiatique chez le cobaye」, 「Remarks on the Plague Prophylactic Fluid」 |
파스퇴르 연구소의 이방인, 콜레라를 향해 칼을 뽑다
발데마르 하프킨은 러시아 제국 오데사(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오데사 대학교에서 저명한 생물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의 지도를 받으며 학자로서의 꿈을 키웠으나, 당시 러시아 사회에 만연했던 가혹한 유대인 차별 정책으로 인해 교수직은커녕 제대로 된 연구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에 부딪혔습니다. 결국 그는 조국을 떠나 스위스 제네바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향했고, 스승인 메치니코프의 추천을 받아 당대 세계 최고의 연구 기관이었던 파스퇴르 연구소에 도서관 사서 겸 보조 연구원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 백신을 개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이 시기,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는 극심한 설사와 탈수를 유발하여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콜레라가 거대한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하프킨은 도서관에서 방대한 문헌을 섭렵하는 동시에 남는 시간을 모두 할애하여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의 독성을 약화시켜 백신으로 만드는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파스퇴르가 확립한 '약독화(Attenuation)' 원리를 콜레라균에 적용하기 위해, 그는 기니피그의 복강에 균을 주사하고 이를 연속적으로 계대 배양하는 고단한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뜨거운 열을 가해 균의 독성을 억제한 1차 백신과, 살아있는 약독화 균을 이용한 2차 백신을 차례로 접종하여 기니피그가 콜레라에 완벽한 면역력을 갖게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동물 실험을 통해 백신의 방어력을 실증적으로 확인한 그는, 이 물질이 인간에게도 안전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숭고하고 용기 있는 결단
동물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하프킨에게 남은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이 백신이 인간의 몸에서도 심각한 부작용 없이 면역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일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은 임상시험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이나 생명윤리위원회(IRB) 같은 제도적 안전장치가 전무했던 시절이었기에, 백신의 효능을 시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가 스스로 그 위험을 온전히 감수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하프킨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실험을 진행할 수 없다는 굳은 신념 아래, 1892년 자신의 팔에 직접 콜레라균으로 만든 백신을 주사하는 대담하고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립니다.
백신을 투여받은 직후 그는 고열과 극심한 주사 부위 통증에 시달렸으나 며칠 뒤 건강을 온전히 회복하였고, 뒤이어 여러 동료 연구자들도 자발적으로 이 생체 실험에 동참하여 백신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학부 시절 미지의 미생물을 다루면서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을까 두꺼운 장갑을 겹쳐 끼고 숨을 죽이며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미생물이 인체 내에서 어떤 변이를 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자신이 세운 가설과 과학적 원리만을 믿고 스스로를 실험체로 내어놓은 그의 행동은 진리를 향한 순수한 열정이 만들어낸 용기였습니다.
척박한 인도로 향한 구원자, 풍토병과의 혹독한 사투
자신의 몸을 통해 콜레라 백신의 안전성을 입증한 하프킨은 이 백신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곳, 바로 콜레라가 풍토병처럼 맹위를 떨치며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던 인도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당시 파리에 주재하던 영국 대사 더퍼린 경(Lord Dufferin)의 강력한 추천과 도움을 받아 1893년 인도로 파견된 그는, 캘커타(현재의 콜카타)를 중심으로 벵골 지역의 마을과 빈민가를 돌며 대규모 예방 접종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인도의 상황은 실험실의 쾌적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타는 듯한 폭염 속에서 백신을 변질 없이 보관하고 운반하는 일은 물리적으로 엄청난 난관이었으며, 무엇보다 서양에서 온 이방인과 낯선 주사기를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뿌리 깊은 불신과 종교적 오해가 가장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왔습니다. 하프킨은 무력이나 강압적인 제도로 접종을 강요하는 대신, 현지의 인도인 의사들과 협력하여 통역을 대동하고 사람들에게 백신의 과학적 원리를 차분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군중들 앞에서 백신을 직접 자신의 몸에 주사해 보이며 안전함을 묵묵히 행동으로 증명했습니다.
그의 진심 어린 노력 덕분에 수만 명의 인도인들이 콜레라 백신을 접종받게 되었고, 접종군에서 콜레라 발병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훌륭한 결과가 통계적으로 증명되면서 그는 인도인들 사이에서 위대한 구원자로 칭송받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또 다른 흑사병, 페스트 백신 개발의 기적
콜레라 백신 접종이 성과를 거두고 있던 1896년 가을, 인도의 거대한 무역 항구 도시 봄베이(현재의 뭄바이)에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염병 중 하나인 페스트(흑사병)가 창궐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림프절이 부어오르고 피를 토하며 죽어갔고, 도시는 순식간에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인도 제국 정부는 하프킨을 긴급히 봄베이로 호출하여 페스트 백신 개발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랜트 의과대학의 비좁고 낡은 복도에 임시로 차려진 열악한 실험실에서 짐을 푼 하프킨은, 쥐벼룩을 매개로 전염되는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을 대량으로 배양할 수 있는 매질을 찾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페스트 백신은 콜레라 백신과 달리 살아있는 균을 약독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열을 가해 균을 완전히 죽인 '사백신(Killed vaccine)'의 형태가 되어야 안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안에 막대한 양의 균을 액체 배지에서 키워내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미생물학 역사에 길이 남을 대단히 흥미롭고 창의적인 에피소드가 탄생합니다. 하프킨은 배양액 표면에 페스트균이 뭉쳐서 자라게 만들기 위해 고심하던 중, 인도 요리에서 흔히 쓰이는 맑은 정제 버터인 '기(Ghee)'를 배양 플라스크에 떨어뜨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버터의 기름방울은 배양액 표면에 둥둥 떠 있었고, 호기성 세균인 페스트균은 산소를 얻기 위해 이 기름방울에 매달려 밑으로 길게 증식하며 마치 동굴의 종유석(Stalactite)처럼 자라나는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하프킨의 종유석 생장(Stalactite growth)'으로 불리는 이 현상은 페스트균을 빠르고 대량으로 농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첨단 장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식재료인 버터를 활용하여 과학적 난제를 해결해 낸 하프킨의 유연한 사고방식은, 실험실이라는 공간이 수동적인 지식의 습득 장소가 아니라 무한한 창의력이 발현되는 현장임을 가르쳐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억울한 누명과 명예 회복, 백신의 성자가 남긴 유산
봄베이에서 단 3개월 만에 완성된 페스트 사백신 역시 하프킨 자신의 몸에 1897년 1월 가장 먼저 투여되며 안전성을 입증받았고, 뒤이어 봄베이 시민 수십만 명에게 접종되어 페스트의 치사율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이 거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으며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02년, 펀자브 지방의 말코왈(Malkowal) 마을에서 페스트 백신을 접종받은 19명의 주민이 파상풍에 걸려 전원 사망하는 끔찍한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영국 조사 위원회는 백신 제조 과정에서 하프킨의 실험실이 오염되었다며 모든 책임을 그에게 뒤집어씌웠고, 그는 불명예스럽게 직위에서 해제되어 인도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한순간에 수백만 명을 구한 영웅에서 파상풍을 퍼뜨린 죄인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영국의 저명한 열대 의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로널드 로스(Ronald Ross)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진상 규명에 나섰고, 그 결과 하프킨의 백신 제조 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이 밝혀졌습니다. 파상풍 감염의 진짜 원인은 현지 조수가 백신 병의 고무마개를 여는 과정에서 소독되지 않은 집게를 사용하였고, 이 과정에서 흙먼지에 있던 파상풍균(Clostridium tetani)이 병 속으로 혼입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년에 걸친 철저한 과학적 재조사 끝에 1907년 하프킨은 억울한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1925년, 인도 정부는 그가 페스트 백신을 연구했던 봄베이의 임시 실험실 자리에 거대한 연구소를 세우고 이를 '하프킨 연구소(Haffkine Institute)'로 명명하여 그의 숭고한 헌신을 영원히 기리게 되었습니다.
발데마르 하프킨이 발표한 주요 논문 및 학술적 기록
하프킨은 치명적인 전염병과의 현장 전투 속에서도 자신이 관찰한 미생물학적 현상과 임상 결과를 꼼꼼하게 기록하여 학계에 보고했습니다.
Le Choléra asiatique chez le cobaye (기니피그에서의 아시아 콜레라)
- 저자 및 연구자: 발데마르 하프킨 (W. Haffkine)
- 게재지: Comptes rendus de la Société de Biologie (1892년)
- 내용 요약: 콜레라균의 독성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약독화 방법론과 이를 동물 모델(기니피그)에 적용하였을 때 나타나는 면역학적 방어 기전을 상세히 설명한 논문입니다. 병원균에 열을 가해 약화시킨 뒤 살아있는 균을 순차적으로 투여하여 면역을 유도하는 데이터를 담고 있어 초기 백신학의 훌륭한 기초를 다진 학술 문헌으로 평가받습니다.
Remarks on the Plague Prophylactic Fluid (페스트 예방액에 관한 고찰)
- 저자 및 연구자: 발데마르 하프킨
- 게재지: British Medical Journal (1897년)
- 내용 요약: 봄베이에서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개발한 페스트 사백신의 제조 공정과 정제 버터(기)를 이용한 종유석 생장 배양법, 그리고 초기 인체 접종 결과를 과학적으로 집대성한 논문입니다. 사백신이 인체 내에서 면역을 유도하는 과정을 통계적 수치와 함께 설명하여 동시대 의료진들에게 전염병 억제를 위한 강력한 실증적 지침을 제공했습니다.
자주 물어보는 질문 (FAQ)
Q. 발데마르 하프킨은 어떤 전염병을 막기 위해 백신을 개발했나요?
A. 그는 19세기 말 인류를 위협하던 두 가지 치명적인 전염병, 즉 오염된 물을 통해 퍼지는 콜레라와 쥐벼룩을 매개로 전파되는 페스트(흑사병)를 예방하기 위한 백신을 세계 최초로 대규모 개발하여 상용화했습니다.
Q. 그가 백신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취한 행동은 무엇이었나요?
A. 동물 실험을 마친 후 백신이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 1892년 콜레라 백신과 1897년 페스트 백신 모두 아무런 주저 없이 자신의 팔과 옆구리 등에 가장 먼저 주사하여 안전성을 몸소 증명해 냈습니다.
Q. 인도 요리에 쓰이는 버터(Ghee)를 미생물 연구에 어떻게 활용했나요?
A. 페스트균을 액체 배지에서 빠르게 대량으로 배양하기 위해 표면에 정제 버터인 '기'를 떨어뜨렸습니다. 페스트균은 이 기름방울에 매달려 아래로 길게 자라나는 독특한 '종유석 생장(Stalactite growth)' 형태를 보였고, 이를 통해 단기간에 엄청난 양의 백신용 세균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Q. 수백만 명을 구하고도 불명예를 안게 된 말코왈 사건은 무엇인가요?
A. 1902년 인도 펀자브의 말코왈 마을에서 페스트 백신을 맞은 19명이 파상풍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처음에는 하프킨의 제조 공정 오염으로 지목되어 쫓겨났으나, 훗날 현지 조수가 백신을 개봉할 때 오염된 핀셋을 사용하여 파상풍균이 들어간 것으로 밝혀지면서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Q. 그의 업적은 현대 과학계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있나요?
A. 인종과 종교의 장벽을 넘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오직 인류 구원이라는 목적으로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한 그는 '백신의 성자'라 불립니다. 오늘날 인도 뭄바이에는 그의 이름을 딴 하프킨 연구소가 설립되어 전염병 연구의 중심 기관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생명 구원의 철학
요즘의 우리가 멸균 처리된 안전한 백신을 손쉽게 접종받을 수 있는 일상의 이면에는, 인도의 폭염 속에서 버터 기름방울을 떨어뜨려가며 미생물과 맞서 싸웠던 발데마르 하프킨의 땀방울이 녹아 있습니다. 오직 인류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신념으로 낯선 땅의 불신과 억울한 누명마저 이겨낸 그의 생애는, 대한민국 과학계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헌신과 기초 의학 연구의 본보기를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실험체로 내던졌던 과거 선구자들의 굳건한 태도와 그 토양 위에서 싹을 틔운 훌륭한 기초 미생물학의 지식들은 훗날 우리 아이들의 더 건강한 내일을 지켜내는 가장 믿음직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 한국미생물학회 편저. (2019). 『미생물학과 전염병 방어의 역사적 이해』. 바이오사이언스출판.
- 이호준, 최민수. (2012). 『백신의 역사: 제너에서 병원균 배양 상용화까지』. 라이프사이언스.
- Haffkine, W. M. (1892). "Le Choléra asiatique chez le cobaye". Comptes rendus de la Société de Biologie, 44, 635-637.
- Haffkine, W. M. (1897). "Remarks on the Plague Prophylactic Fluid". British Medical Journal, 1(1883), 1461.
- Hawgood, B. J. (2007). "Waldemar Mordecai Haffkine, CIE (1860–1930): prophylactic vaccination against cholera and bubonic plague in British India". Journal of Medical Biography, 15(1), 9-19.